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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코리아시단] <아침의 시>

[뉴욕코리아시단] <아침의 시> 자라지 않는 나무/김상미

뉴욕코리아 2018. 8. 8. 04:21

문화 >뉴욕코리아 시단

 


아침의 시


자라지 않는 나무

김상미



























우리는 너무 우울해 먹은 것을 토하고 토하고
우리는 너무 외로워 귀를 막고 노래를 부르고 부르고

그래봤자 우리는 모두 슬픈 뱀에게 물린 존재
상처가 깊을수록 독은 더 빨리 퍼져

우리는 키스를 하면서도 썩어가고
우리는 사랑을 나누면서도 썩어가고

그래봤자 우리가 소유하는 건 날마다 피로 쓰는 일기 한 페이지
나부끼고 나부끼고 나부끼다 주저앉는 바람 한 점

그래도 우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밖으로
가급적이면 더 치명적인 비극, 희망을 향해 바퀴를 굴리고

그러다 만병통치 알약처럼 서로를 삼키고
사막같이 바싹 마른 가슴에 불치의 기우제를 올리는

우리는 수많은 이름들을 발가벗겨 구름 속에 처박고
어찌할 줄 몰라 밤에게 된통 걸려버린 나무 그림자

밤새도록 춤, 춤만 추는 자라지 않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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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가 삶을 피폐시켰다. 아니, 인간 자신이 스스로를 소거했을 것이다. 태어날때부터 숙명적인 장애는 아닐것이다. 우리를 벗어난 개인의 자아가 거세된 이 한덩어리의 세상 무대에서, 삶의 수레바퀴는 혹독하고 인간의 삶이라는 족쇄는 버거우며, 그 과제가 너무 무겁다.


삷의 치열한 바퀴에 이리저리 치이며 개성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 시달리게 되는 생의 존재론적 비애!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조리의 틀에 박혀 자랄수 없는 불구의 나무다. 한 자리에 쳐박혀 춤만 추는 그런 자라지 않는 나무일 터. 그러나 이 시는 고발한다. 그게 바로 우리의 자아를  스스로 잃어버리거나 어디론가 처분해버린 채 살고있는 우리자신을 각성시킨다. 현재 당신과 나는, 이 아수라 세상에서 다만 자라지 않고 춤을 출 뿐이라고. 어서어서 이 시간의 비망록인 현주소에서  깨어 일어나라고. 시인은, 그 통찰의 죽비로 잠든 세계를 내리친다. 어서 나 자신을 찾고 무성하게, 그리고 번성하라고!



김상미 시인은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우린 아무관계도 아니에요』가 있다. 2003년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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