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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코리아]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 - 윤옥란 시집

뉴욕코리아 2024. 7. 30. 12:42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 - 윤옥란 시집 (상상인 시인선 056)

 

 

책 소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는 어떤 빛, 어떤 소리가 날까. 윤옥란 시인은 이 경계에 처한 사람들을 수없이 관찰하면서 그의 철학과 문학을 일으키고 있다. 백 년 안팎의 생애 가운데 어쩌면 가장 절실한 오뇌의 순간을 지켜보면서 시인은 그 현장에서 떠돌고 있는 영기靈氣를 낚아 올리거나 포획하여 그 나름의 언어의 집을 짓고 있다.

그 집 속에는 인간의 아름다움은 물론 욕망 회한 사랑 등 온갖 형이상적 요소들이 가득 들어 있다. 또한 질료들을 고르고 조탁하여 빛나는 조옥 편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뜨겁게 마주치는 생의 경험들을 그냥 흘러가 버리게 놓아두지 않고 ‘시’라고 하는 창조적 경험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_추천사(문효치 _시인,,미네르바 대표) 중에서

 

 

시屍의 집이었다가 시詩의 집이 되고 다시 시時의 집이 되어가는 집에서 멀어지며 나는 당신 집에서 환하게 쏟아져 나오는 흰빛들을 봤어요. “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매몰차게 밀려 나오는 저 얇고 단단한 흰빛” 시간이 계속되는 한 멈추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나는 모퉁이를 돌아 내 집으로 왔죠. 그리고 창문이 칠판인 양 내 집 창문 앞에 섭니다. 팽팽한 창문이 요동칩니다. 바닷물인 것처럼. 그래서였군요. 당신이 아픈 자들의 방에 바다를 끌어들인 이유. 아픈 자들의 주위에 바다를 두르는 이유. 당신 집에는 흰 것이 많고 아픈 사람이 많고 바다가 많았어요. 당신의 양수였군요. 시간 속으로 끌고 나오려는. 코르크 마개로 닫은 유리병 속의 물처럼 팽팽한데 요동치는 양수의 세계. 마치 태아를 이끌어 나오듯 당신이 양수의 세계에서 바다의 세계로 나가고 있군요. 아픈 사람들의 이름을 끌고 그곳으로 가고 있어요. 처음 ‘시屍의 집에서 시詩의 집’으로 갔던 일처럼 이제 ‘시詩의 집에서 시時의 집’으로 건너가고 있어요. 시간 속으로 가고 있어요. 시간이 물결로 요동치는. 시간의 존재는 “설움이 시계방향으로 한 구절씩” 돋아나지만(「휘파람새」 그 구절을 하나씩 받아 적는 사람이 시인이니까요. 그것이 시니까요. 흰빛으로 날아가도! 칠판 앞에서 백묵을 놓지 않는 일.

_해설(여성민 시인) 중에서

 

 

시인의 말 

 

사랑한다는 말을 쓰고 싶을 때

그 말의 무게에 짓눌려

줄임표로 생략된 그냥

 

부탁의 말을 하고 싶을 때에도

차마 속내를 다 드러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말끝에 붙인 그냥

 

가끔씩 내 안에서 봄의 새싹처럼 돋아

파릇파릇 위신을 세워주거나 뿌리를 넓혀 가는 말

그냥…

 

나이팅게일 선서문을 생각하게 되는

요양병원 중환자실과

요양원에서의 숱한 신음들

쓰러진 침상의 이름들

 

산소마스크를 낀 절박한 분들, 종일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모니터 알람 소리

요양원으로 출근하는 나는

‘그냥’이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 같아서

어떤 날은 말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분들에게 한 권의 몸의 말을 드린다

 

 

2024년 7월

윤옥란

 

시집 속의 시 두 편

 

클락새

 

 

새벽 두 시, 클락클락

어둠 속에서 울어대는 새 한 마리

사방의 고요가 흩어진다

 

그녀가 계절을 모로 깔고 누운 지 몇 해

날개는 점점 하늘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비의 냄새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말이 아닌

창공이 팽팽해지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소리의 끝자락에서 요동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혹 어느 한때 망부석처럼 홀로 돌아앉아

관절이 저리도록 씹어 삼킨 그리움의 쓴 뿌리였을까

 

명치끝을 타고 들어간

세상의 빛을 차단한 암굴

어둠에 깔린 이야기들이 꽁꽁 묶여 있다

 

달도 별도 뜨지 않은 나래 1호실

오늘 밤 날개는

마술에 걸린 듯이 고삐를 풀고 클락클락

 

恨이 진화된 소리의 어원

침상의 입마다 달싹인다

닫힌 귀가 쫑긋하다

 

 

하루치의 그늘

 

 

새벽길 걷는다

가로등에 몸을 넓힌 벚나무 품이 넓어졌다

 

측량할 수 없는

생각의 무게들을 달빛처럼 사뿐히 내려놓는 나무의 새벽

 

허공 속에 가려진 잎의 그림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발밑 그림자를 눈여겨보며

한 뼘씩 그늘을 짓고 있다

 

소음과 공해 속에서도

작년 봄 향기로운 기억들을 가지마다 쏟아내며

 

뿌리는 내 몸의 의상처럼 치수를 재고

생의 꽃무늬를 재단하고 있다

 

오늘은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나의 뻣뻣한 두 다리를 자신의 그늘 속으로 들여 쉬게 한다

 

그 아래서 나방의 여린 날개가 태어나고

뿔 달린 하늘소가 새벽 그림자를 따라나서기도 했다

 

벚나무 아래 물길의 긴 꼬리 반짝임도

수초 사이에서 몸을 뒤척이며 뒤돌아본다

 

나무가 고요할 때는

세상의 어깨를 품는 시간이다

 

 

차례

 

 

1부 달아난 꿈의 지느러미

 

양말 18

눈글씨 20

꼬리를 둥글게 말아 드는 달집 22

180분 24

클락새 26

구두의 口頭 28

그냥, 그냥 30

그믐달의 귀로기억은 날마다 엄마를 불러 34

꽃피는 돌 36

노블케어스에 걸린 초상화 38

눈물의 격 40

낙화의 시간 42

 

 

2부 젖은 생의 무늬

 

너울너울 건너는 바다 46

눈사람 48

릴레이 선수 50

지지 않는 별의 이름으로 52

木魚 54

식지 않는 이름 56

물고기 어머니 58

미술 시간 60

밤벌레 62

북어 64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66

도란도란한 밤 68

사슴발 여자 70

상처의 집 72

 

 

3부 저 얇고 단단한 흰빛

 

새들의 부리를 축이는 11월의 장미 76

그래, 그래 78

쇠비름 80

다정의 이별 82

스무하루 동안 84

흰빛 86

알 수 없는 손 88

오월을 지나는 바람 90

오후 5시와 새벽 다섯 시 92

눈꺼풀 일지 94

나비 운구 96

이름 하나 목에 걸고 98

이팝나무 밥상 100

 

 

4부 숨 몰아쉬며 다가오는 착란

 

저무는 것마다 팽팽하다 104

보라로 물든 숨 106

봄의 음계 108

위로가 기울어져 있다 110

침략자들 112

통곡의 미루나무 114

7일 동안 116

휘파람새 118

황소개구리의 애가 120

하루치의 그늘 122

그가 머문 곳이 아직 따뜻하다 124

푸른 숲을 이동하는 꿈 126

무릎걸음으로 맞는 유월 128

너의 이름은 향기로운 꽃이 되고 130

 

 

해설 _ 당신 집에는 아픈 사람이 많군요 133

-시屍의 집에서 시詩의 집으로

_ 여성민(시인)

 

 

저자 약력

 

윤옥란

 

· 강원도 홍천 출생

·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졸업

· 2018년 『미네르바』등단

· 시집으로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가 있다.

· 동서문학상 입선, 보훈문예작품 공모전 우수상(2회), 농어촌 문학상 우수상, 서울 암사동 유적 세계 유산 등재기원 문화작품 공모전 우수상, 근로자문학제 은상(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 대상을 받았다.

 

12loveuu@daum.net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

윤옥란 시집

상상인 시인선 056 | 초판 1쇄 발행 2024년 7월 25일 | 정가 12,000원 | 128 *205 | 152쪽

ISBN 979-11-93093-55-9(03810)

도서출판 상상인 | 등록번호 572-96-00959 | 등록일자 2019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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