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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코리아] 꽃들의 이별법 / 문정영 시집 (시산맥사)

뉴욕코리아 2018. 10. 18.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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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이별법 / 문정영 시집 (시산맥사)


                                


시산맥 감성기획시선 003.




문정영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이번 시집에는 문정영 시인이 대상과 자아의 자유로운 동화(同化)와 투사(投射)를 통해 빚어낸 말의 출렁거림으로 가득하다. 그의 언어는 동적이지만 요란하지 않고 어두워지지만 침잠(沈潛)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풍경을 섞고, 존재와 사물의 거리를 자유롭게 펼치고 좁히는 농익은 언어들은 그의 시가 새로운 차원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시인은 세련됨으로 언어를 치장하지 않고, 완고한 형식에 상상력을 가두지 않는다. 열정과 절제를 동시에 포섭하는 시적 엄격성으로 문정영은 가슴을 긁는 문장들을 일구어 낸다. 여기엔 세월로 세공한 그의 시력을 짚어내는 즐거움이 있다.


이별의 역설로 가는 저녁의 몸짓


이번 시집 『꽃들의 이별법』은 어둠으로 가는 존재의 비의(悲意)와 성찰로 가득하다. 어두워진다는 것은 밝음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빛의 시간으로부터, 꽃의 절정으로부터, 짙은 향기로부터 떠나는 길이다. 그리하여 시집의 시들은 온통 저무는 자연과 몸에 대한 웅성거림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눈은 자연에 닿고, 자신의 몸에 자연을 들인다. 멀리 있던 자연은 어느새 시인 안에 머물고, 스민 풍경은 어느 사이 “닿지 못한 곳까지” “아주 멀리 갔다가 오”(「늑대」)는 것이다.

시인은 세계와 투쟁하지 않는다. 더 정확 말하면 그가 세계와 대결하는 방식은 경쟁과 싸움이 아니라 소통과 나눔이다. 잡지만 놓는 것이고 버리는 자세다. 그것은 마치 중용의 도(道)처럼 한쪽으로 치우치치도, 넘어가지도 않는 절묘한 균형과 통제를 요구한다. 이 아슬아슬한 ‘줄의 길’을 건너왔고 건너가고자 한다. 사물과 사물, 인간과 인간, 자연과 세계가 서로 절묘한 조화와 질서를 유지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욕망’에 대한 이해와 성찰에서 기인하기에 시인은 탈속(脫俗)으로도 비속(卑俗)으로도 치닫지 않는다. 자연은 그에게 존재의 감옥을 벗어나는 도피처가 아니라 존재의 욕망을 성찰하고 닦아내는
또 다른 몸인 것이다. 

“내 발바닥이 비어 더는 걸을 수가 없”을 때까지 그는 “꽃이 되는, 햇빛도 바람도 그만큼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그곳”(우추프라카치아)
으로 길을 떠난다. 그 고단한 어스름을 향한 여정에 꽃의 시간이 출렁이기를, 바람의 온기가 숨쉬기를 바란다. 



시인 소개 | 문정영

전남 장흥 출생. 건국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97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낯선 금요일』 『잉크』 『그만큼』 등이 있음. 계간 《시산맥》 발행인. 〈윤동주서시문학상〉 대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3회 수혜.

















  시집 속의 시

가운

 

   나를 입은 그가 서 있다

   낭하는 위험을 느끼는 정신이 가지는 골목,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는 입가의 상처를 껴안고 산다

   그의 몸을 안을 때 나는 전부를 풀어놓는다
   갸냘프다고 말하는 것은 골목에 대한 실례, 
   그의 몸피가 줄어들면 나는 스스로 펄럭이는 깃발

   하루는 깊고 깊은 잠을 입어야 사라지고, 그가 나를 벗은 후에 하루는 차곡차곡 접힌다

   그의 꽃이 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중심이 세워졌다가 사라져가는 것을 모르는 척했다

   바람과 햇빛을 입지 않는 山처럼 내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어찌 슬픔뿐이랴

   나를 입은 그가 가벼워진 神話처럼 납작하게 누워 있다



꽃들의 이별법



​   네 앞에서 꽃잎 위 물방울처럼 있는다

   새벽이 지나간 자리가 빨갛다

   작은 무게를 버티는 것이 꽃들의 이별법

   한 발로 나를 짚지 못하고 너를 짚으면 계절 하나 건너기 어렵다

   너를 다 건넜다고 생각했는데, 버티기가 쉽지 않다

   한 발 내밀 때마다 하늘이 수없이 파랬다 검어진다

   꽃술 내려놓고 그 향기 따라 건넜다, 어두웠다

   수평으로 걷지 못한 날들이

   물가의 신발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해가 점점 부풀어 오르면 벌들은 일찍 떠난다

   네 숨소리가 꽃잎 떨리듯

   높아졌다 가라앉는 것을 내가 보고 있다

긴 사랑의 끝에 샘솟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시편들

이번 시집은 대상과 자아의 자유로운 동화(同化)와 투사(投射)가 빚어낸 말의 출렁거림으로 가득하다. 문정영의 언어는 동적이지만 요란하지 않고 어두워지지만 침잠(沈潛)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풍경을 섞고, 존재와 사물의 거리를 자유롭게 펼치고 좁히는 농익은 언어들은 문정영의 시적 경지가 새로운 차원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시인은 세련됨으로 언어를 치장하지 않고, 완고한 형식에 상상력을 가두지 않는다. 열정과 절제를 동시에 포섭하는 시적 엄격성으로 문정영은 가슴을 긁는 문장들을 일구어 낸다. 여기엔 세월로 세공한 그의 시력을 짚어내는 즐거움이 있다.

1부
꽃들의 이별법 - 17
아스피린 - 19
가운 - 20
비타민 - 21
속초, 푸른 - 22
복도 - 24
우추프라카치아 - 26
독주 - 28
얼음 - 30
그릇 - 31
저녁 - 32
지붕 - 34

2부
선글라스 - 37
장흥 - 38
속도공황장애 - 39
페이스메이커 - 40
스웨터 - 42
줄 - 44
소화처럼 - 46
일력 - 47
어떤 감옥 - 48
구름을 얻어내는 하나의 방식 - 50
블랙 - 52
나비는 어떡해 - 54

3부
별 달린 가운 - 59
비밀문장 - 60
겨울 - 61
竹 - 62
목 - 63
순례 - 64
삼호자객관 - 65
불패 - 66
두부 - 68
일자변경선 - 70
내가 기르지 않는 나비 - 72
숫자들 - 74
나무 심장 - 75
청춘열차 - 76

4부
애틀랜타 - 81
다발성 척추 협착증 - 82
하지 - 84
천일염 - 85
불 안 나가게 정신 차려 - 86
해를 따다 - 87
스머프 - 88
투숙하다 - 90
순례 - 92
탐진 - 94
스텝 - 96
물의 행보 - 93
늑대 - 98
질문 - 100

해설 / 강경희(문학평론가) -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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