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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코리아] 다정한 사물들 - 김혜영 시집

뉴욕코리아 2021. 9. 26. 15:04

다정한 사물들 - 김혜영 시집

북마스터소개글

 

 

식탁 아래 떨어진 빵가루가
사라지는 동안

안드로메다 은하 너머로
빛이 날아간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햇빛처럼

 

출판사 서평

 

“어긋남의 감각”
김혜영 시집 시집, [다정한 사물들]


㈜여우난골의 2021년 시인수첩 시인선 49번으로 김혜영 시인의 시집 [다정한 사물들]이 출간됐다. 김혜영 시인은 1997년 현대시로 등단한 이후 줄곧 모던한 시를 발표, 시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지금까지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프로이트를 읽는 오전』두 권의 시집을 상재하였으며 이번 시집은 저자가 10년 만에 내는 세 번째 시집이다. 아울러 두 권의 평론집 『메두사의 거울』,『분열된 주체와 무의식』과 두 권의 산문집 『아나키스트의 애인』,『천사를 만나는 비밀』을 출간하며 다방면에 예술적 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 제8회 애지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을 수혜 받았다. 이번 시집은 현대인의 무의식과 사랑에 대한 얘기를 시를 통해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후기 산업사회에서 사물화 되어가는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과 포스트휴먼이 도래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불안과 고독을 묘사하면서, 정치적인 비판 의식을 성적 이미지를 통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자본이 우선시 되어 인간이 사물화 되어가는 현상을 여러 시적인 상황을 통해 제시한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불안과 소외의식을 느끼는 소시민들의 감정을 현대적 감각으로 전달하려고 하였다.

김혜영 시인의 시는 낯설다. 단지 새롭게 쓰려는 낯설게 하기의 의도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상징 질서에 복속하는 자아와 소망하는 자아가 만드는 간격이나 내면과 꿈의 언어가 기술하는 이미지가 새롭고 기괴하다. 그는 「욕조의 마네킹」의 시편처럼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금을 만들고, 서로 다른 사물의 이미지를 병치하고 치환한다. 또한 주관적 감정으로부터 도피하는 주지적인 시적 태도를 일관하는데, 이는 서정적 자아보다 페르소나의 변주를 선호하는 발화로 나타난다.
시인은 자아를 드러내기보다 숨기거나 감추는 시법을 선호한다. 그래서 일인칭 경험적 자아를 따라 시를 읽는 관습에 익숙한 독자를 당혹하게 만든다. 시편을 따라 읽으면서 시인의 의식지향과 변화의 지평을 찾으려는 비평의 기획을 차단한다. 반서정주의가 가져다주는 곤경이라 하겠다.

김혜영 시인이 그려낸 이미지들은 어긋나 있다. 이는 사물이 유기적인 연속성과 동일성 속에서 존재한다는 생각과 거리가 있다. 김혜영은 이질적이고 반대되는 사물의 공존과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변화, 단절, 부정이라는 현대사회의 양상에 상응하는 미메시스이다. 자기부정의 방식으로 표출되는 현대성은 이미지의 병치와 치환, 그로테스크, 아이러니, 알레고리와 같이 주지적인 양식을 동반한다.
김혜영 시인은 현실과 상상을 가로질러 현대적인 새로움의 이면을 해부하고 압류되고 있는 미래를 염려한다. 그가 지닌 어긋남의 감각은 ‘맹그로브 숲’과 같은 어떤 실재의 세계에 당도하려는 강렬한 부정의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자신을 뒤집는 오랜 전통을 생각하면서 진정한 새로움의 가치를 생각한다. 어긋나면서 다시 서로 결합하는 의미의 열린 지평을 개진함으로써, 김혜영의 시학은 현금의 시단에서 중요한 개성임에 틀림이 없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김혜영 시인


1966년 호수를 닮은 바닷가 마을인 경남 고성의 배둔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 진학한 뒤 수녀원 기숙사에서 안나 수녀를 만나 영세를 받았고, 세례명은 소화 데레사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수도자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나 존재의 근원에 대해 탐색하고 있다. 숭산 큰스님의 제자인 미국인 무심 스님을 만나 참선의 세계를 배웠다.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거쳐 같은 대학원에서 고백파 시의 창시자인 로버트 로월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현대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 『프로이트를 읽는 오전』, 평론집으로 『메두사의 거울』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 산문집으로 『아나키스트의 애인』을 간행했다.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를 A Mirror Opens One Thousand Ears(i Universe, Printed in U.S.A. 2011), 『&#-27300;子打开千双耳朵』(옌벤대학교 출판부, 2011)로 번역 출간했으며, 시선집 『당신이라는 기호』를 『あなたという記号』(일본 칸칸보 출판사, 2012)로 번역 간행했다. 일본에서 간행되는 『Something』을 비롯해 여러 문예지에 작품들이 번역되어 조명되었다. 『시와 사상』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부산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다. 애지문학상을 수상했고, 부산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목차

1부

튤립·13
목련을 닮았다·15
노르웨이 숲의 사이프러스·18
나무와 하얀 뱀이 있는 숲·20
마네의 풀밭에서·21
다정한 사물들·24
가스라이팅·26
진주 귀걸이를 단 서태후·28
야구 소년이 잠들었을 때·32
데미안 허스트·34
뱀을 그리는 일곱 가지 비밀·36
사막의 저격수·38
개미들의 청춘극장·40세탁소에 걸린 남자·42
고래의 입술·44
모던 걸·46
꽃들의 복음·50
수월관음도·54

2부

A. I. 소녀와 히아신스 소년의 대화·59
무감각 제국의 소년·62
유리병의 감정·64
아침 식탁을 차리는 알렉사·66
초록 뱀 구두·68
시계는 사과나무의 사랑을 모르고·70
동행- 제24호·72
얼굴로 만든 책·76
당신이라는 은유·78입술들·80
질문들·82
오키나와 해변의 연인·84
사바나 초원에서·88
소년의 피로 물든 나무·90
오슬로는 투명해·92

3부

까마귀·97
욕조의 마네킹·100
모노로그·102
딸기를 먹는 일요일·104
변태적인 R과 마조히즘 취향을 가진 S·106
냄비와 구두·110
더블베이스 흑인 연주자, 찰리·112
내 이름은 차밍 걸·114
나무는 테니스를 친다·118
자서전을 쓰는 가을 저녁에·120
새들의 신발·122
맹그로브 숲으로·124
로마에서 에스프레소 커피 두 잔을·126
도서관의 마녀들·129
플라스틱 인어·132
포르노그래피 시상식·134
엔딩 게임·137

해설 | 구모룡(문학평론가)

“어긋남의 감각”

 

본문중에서

 

고래의 입술


김혜영

고래는 귀를 닫는다
(그물의 미묘한 떨림이 감지되어도)
(혁명의 신호일지라도)

고래의 꼬리는 파란 물빛을 흔든다
(합법적인 조치라고 선언하는 경찰)

구멍새우의 집은 바닥이다
(빈 둥지를 지키는 구멍새우)
(직장을 떠날 수 없어)

가마우지는 철제 크레인 위에서 운다
(합법적인 경찰이 걸어오고)
(검사가 걸어오고)

고래가 꾸역꾸역 새우를 삼킨다
(트림을 하는 순간)
(폭발하듯 솟구치는 물기둥)

고래는 입술로 듣는다
(법의 방파제에)
(녹색 파문이 번지는 소리를)




뱀을 그리는 일곱 가지 비밀


김혜영


반지를 도둑맞았네. 범인의 손을 보았지만 묻지 않았네. 의심이라는 뱀이 자라는 유월, 언니는 숲속으로 걸어갔네. 앗, 뱀이다! 비명 소리에 숲은 어깨를 움츠렸네. 초록 뱀은 덤불로 달아나고

문장을 도둑맞았네. 뱀 꼬리는 행간으로 미끄러지고, 호두나무가 상을 받았네. 자동차 눈매는 사나운 표범을 닮았지. 눈동자는 잃어버린 문장을 찾아 숲으로 떠나고

나비를 액자 바깥으로 날려 보낼까. 천경자는 새들의 입안에서 녹아버렸네. 꿈틀거리는 뱀을 그린 그녀는 그림을 도둑맞았네. 물감을 쏟아버리고 붓을 꺾었네. 그녀는 초록 뱀이 되었네. 벽에 걸린 그녀의 머리에 등꽃이 피어났네.

발자국을 지우는 사막
태양의 분화구처럼
붉게 타버린 심장을 훔치는 유월

의심이라는 뱀이
신성한 숲으로 들어가는 계절

뱀을 그리는 일곱 가지 비밀은
화원에서 은밀히 전수되고

그림 속 하늘은
아무 일 없는 듯 고요하네



유리병의 감정

김혜영


거미가 유리병에 그린 스케치는
무채색이지, 검정이거나, 회색이거나,
가끔 색깔이 없어 편안해

거미는 가볍게 지나가고
유리 표면에 상처는 남기지 않지

손가락은 유리병을 쓰다듬고
검은 혀가 건네는 밀어
소름이 돋는 오후의 식탁

물빛 그리워 수국은 축 늘어지고
넝쿨장미는 시들고
구멍 난 신발이 젖었어

해무가 번지는 바닷가에서
빨간 맨드라미는
식탁에서 일어난 사건을 훔쳐본다

해변에 널브러진 조개껍질에
얼룩덜룩 빛이 반사되고
거미는 유리병의 감정을 모른다

아, 유리에 실금이 번져요

거미의 입에서 나온 흰빛이
유리병 뚜껑 위로 쏟아져 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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