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거미집-김세영 시집 (시작시인선 214)
출판사 서평
김세영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하늘거미집>이 시작시인선 214번으로 출간되었다. 의사이기도 한 그의 시는 서정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추상적인 어휘보다는 구체성을 확고하게 지니는 시어를 사용해, 추상의 세계로 떠버리기 쉬운 서정의 세계를 구체적인 몸을 만들어 표현하기에, 세계를 거미집이라는 그물로 확고하게 잡아 올린다. 낯설게 느껴지기 쉬운 의학용어와 생물학적 용어를 시에 사용하면서도, 독자에게 실체를 확고하게 느낄 수 있도록 짜 올린 그의 시들은 현실의 말을 통해 환상을 잡아내는 아름다운 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추천사
오호라, 김세영 시인이 그냥 의사 시인인 줄만 알았더니, 허공에 떠도는 시詩 떼를 걷어 올리는 어부였구나. ‘허공의 어부’였구나. 오늘도 청진기 대신 “당산목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그물을 손질하는”(「허공의 어부」) 시인이여, “열대야의 밤에도 남극의 펭귄처럼/ 불면의 맨발로 빙판 위에 서서” “녹아내리지 않는 몸”(「얼음골에서 견디다」)으로 오직 시 하나만을 낚아채기 위한 그 감각적이고도 견고한 의지가 눈물겹구나. 김세영 시인을 만나고, 밥 먹고, 시종일관 환한 웃음으로 이야기도 하지만, 나는 어이하여 그가 “속눈썹 적시던/ 새벽 이슬비, 그 가느다란/ 그물망 촉수로만/ 입질을 감지할 수 있는/ 땅 속의 꽃잎”(「코멜리나」)이었음을 깨닫지 못했을까. 나는 왜 “누대의 생에 걸쳐서 보낸 송신을/ 수천 광년 거리에서 이제야 수신했다고/ 깜박거리며, 아포피스처럼 다가”온 “하늘거미집 같은/ 둥지를 내 울림통 속에”(「너」) 짓고자 소망하는 그의 속내를 간파하지 못했을까. 때로는 신화적인, 때로는 참신한 상징성으로 “그물망의 허공을 줄기러기의 날개로 후려치”(「시산제」)는 저 매서운 시정신을 보라. 마침내 “아직 육탈하지도 않은/ 설익은 그리움에 몽유하는/ 나를 보고, 마애불이 설핏 웃는”(「천년 묵은 달아」) 적멸의 허공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이 기막힌 『하늘거미집』을 보라.
―허형만(시인, 목포대 명예교수)
저자 약력
김 세 영
부산 출생.
2007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으로 『물구나무서다』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 가 있음.
서울의과대학 대학원 졸업, 성균관의대 외래교수.
한국의사시인회 회장, 계간 『시담』 편집인, 시산맥시회 고문, 문학의학학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인권위원.
제9회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
mokjoin@daum.net
HP: 010-8984-6964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그물1-결
얼음골에서 견디다 13
나비의 창세기 14
허공의 어부 16
탄천의 징검다리 18
바람의 시제 20
해우 22
어둠의 결 23
쇼 25
튀기 27
어느 하루의 음계 29
뭉치 31
인력의 덫 33
제2부 그물2-필
너 37
백자를 품다 39
흑장미 41
곱사등이의 노래 43
필 45
성소 47
가슴에 기포가 돋다 49
버드나무의 눈빛 52
틈 54
일주문 55
오래된 사월 57
겨울장미를 위한 송가 59
제3부 그물3-마디
마디 63
뼈 66
방울의 생태 68
코멜리나 70
자전거 타기 72
비포 앤 애프터 74
데자뷰 76
지중해에서 변이하다 78
툇마루 80
알츠하이머씨의 집 82
우조도雨鳥圖 84
발가락이 길다 86
제4부 그물4-강
강 91
입춘, 구룡마을 93
시산제 95
태양족의 제의 97
夢遊胡蝶圖 99
나미브의 양서류 101
까보 다 로까 103
그의 이름은 볼라벤 105
해맞이 107
흑해에서 사르다 109
와인 파티 111
화천호의 그녀 113
그 여름의 모자 114
제5부 그물5-동동
딩아돌하 117
신처용가新處容歌 119
천년 묵은 달아 121
가야 여인 123
동동 125
공무도하 127
신구지가新龜旨歌 130
신배비장전新裵裨將傳 132
첨성瞻星 134
나라 글 집 136
알함브라 138
해설
유성호 시원始原과 몸의 탐구를 통한 형이상의 존재론 140
시인의 말
허공의 해류를 떠도는
청어 떼를 품으려고 던진
어부의 그물망,
하늘 거미의 집이
이 시집이다.
하루살이들의 군무를 보며
2016년 초하의 밤
김세영
시집 속의 시 한 편
바람의 시제
그가 개구리처럼 나의 등에 앉아 있을 때,앞발로 몸속의 줄을 뽑아내어
그의 뒷다리에 묶어 허공 속으로 점프시킨다
일렁이는 헛개나무 가지에 줄이 걸쳐지면
고공 줄타기하듯 건너간다
뒷발로 엉덩이 쪽의 줄을 당겨본다
검은 허공 속의 낡은 그물집이
낚시 바늘에 걸린 폐어망처럼 출렁거린다
그의 배설물로 짠 유령의 집 같다
그가 흙먼지를 일으켜 세운 흔적의 집,
그가 안개를 헤치고 세워야 할 무상無相의 집,
그 사이가 나의 궤도임을 알고 있다
리프트처럼 흔들리는 그물집이
그가 내게 준 선물이다
두 집 간에 난기류가 일어나서
디딤판에서 떨어지면, 사지가 줄에 묶인 몸은
거열 형벌처럼 조각조각 찢어지고 말겠지
별의 형상으로 태어난 꽃이
망설임 없이 그에게 몸을 던지고
씨방 속에서 꿈을 키우듯이,
내가 던진 수많은 줄들을
내가 매단 수많은 룽다風馬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겠지
허공에 걸쳐진 별들의 해먹이
밤마다 내 몸을 몽유케 하겠지만,
죽어서도 내 혼이 그곳에 깃들지 못하겠지만
그가 부를 때는, 즐거운 몽상의 믿음으로
오늘도 어제처럼 줄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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